
이혼은 흔히 실패처럼 불리지만,
어떤 선택은
끝이 아니라
방향을 바로잡는 결정일 수도 있다.
이 글은
앞선 두 편에서 이야기한
선택과 인내의 맥락 위에 놓여 있다.
나는 이 이야기를
개인의 실패로 설명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이 선택은,
하필 운이 나빠
예측할 수 없는 사고를 겪은 이후
그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내려진 용기 있는 결정에
가깝다고 느낀다.
이들은
결혼 생활에서의 책임감과 존중에 대한 기준이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을 만났던 경우였다.
결혼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상대의 모습을
결혼 생활 속에서 하나둘 알아가며,
이들은 관계를 포기하기보다
어떻게든 회복해보려 애썼다.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노력했고,
참을 수 있는 만큼 인내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상대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이들은 더 이상
자신을 속이며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회적 시선,
가정이 해체된다는 불안,
앞으로의 삶에 대한 불확실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이혼이라는 선택을 한 것은,
도망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선택을 끝까지 책임지고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로 한
결단이었다.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에게
이혼을 결정하는 과정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게 정말 옳은 선택인지,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하고
이 방법, 저 방법을 모두 시도해본 뒤에야
마지막으로 도달하는 결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선택이 생겨나는 이유는
개인의 부족함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는 연애할 때
상대가 나에게 보여주는 정보만을
알 수 있을 뿐이며,
아무리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신중하게 배우자를 선택하더라도
그 결과는
개인의 판단 능력과 무관하게
좋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사전에
100% 확인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성은
그중에서도
가장 통제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김주하와 안현모의 경우 역시
그들은 신중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신중함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만났던 경우에 가깝다.
그들이 살아온 삶의 태도와
쌓아온 커리어를 볼 때,
결혼 상대를
성급하게 선택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언제나 타인을 존중하는 태도로 살아온 사람일수록
대화가 잘 통하고
취향이 비슷한 상대를 만나면,
그 사람 역시
나와 비슷한 기준과 가치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자연스럽게 믿게 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말과 태도만으로는
상대가 언제든 상황에 따라
존중의 태도를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인지까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자신의 예측이
빗나갈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람에게는
여러 얼굴이 있고,
누군가는
내 앞에서 가장 좋은 모습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연애 초반,
내가 그 사람에게
매력적인 대상일 때는
더욱 그렇다.
연애 기간이 짧았다는 점 역시
이 불확실성을
더 크게 만들었을 뿐,
어리석음의 증거는 아니다.
상대의 모든 얼굴을 확인하기에는
시간과 정보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이다.
김주하의 결혼 스토리와,
안현모의 결혼 생활을 보여주었던 방송을 통해
그들이 가정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오랜 시간
인내하고 노력했는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국
이 결혼 생활이
회복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바로잡기 위해
이혼이라는 선택을 했다.
끝까지 참는 것이
언제나 성숙한 선택은 아니며,
떠나는 것이
항상 실패를 의미하지도 않는다.
어떤 관계는
더 잘해도 나아지지 않고,
더 참아도 바뀌지 않는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인생의 방향을 다시 잡는 결정이라면,
그 선택을
실패라고 부를 이유는 없다.
적어도
자기 인생을 끝까지 책임지려는 선택은
실패와는
다른 이름을 가져야 한다.
이혼은
판단 기준이 바뀐 결과가 아니라,
이전에는 알 수 없었던 사실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 기준을 끝까지 지킨 선택이다.
우리는 아직도
떠나는 사람보다
끝까지 참은 사람을
더 성숙하다고 믿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러나 어떤 이혼은
인내의 실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존중하기로 한
가장 책임감 있는 선택이다.
가끔, 조용히 글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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