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년생이 시작되던 순간 — 임신과 첫 만남

이 글은 연년생 육아에 대한 정리나 조언이 아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그 길에 들어설 때
특별한 각오를 한 적도 없었다.

그저 일이 그렇게 흘러갔고,
나는 그 안에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 시작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글은 2편 연년생 육아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으로 이어진다.)


연년생이라고 하면
첫째가 태어난 다음 해에 둘째가 태어난 경우를 말한다.
나의 경우 두 아이의 개월 수 차이는 16개월이었다.

그 숫자가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는,
그때의 나는 알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막연하게 아이는 둘을 낳을 거라고 생각해왔다.
부모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나의 자매였고,
터울이 적은 우리는 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둘도 없는 친구처럼 자랐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내 아이들에게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같이 자란다는 감각,
혼자가 아니라는 기억을
아이들 마음 어딘가에 남겨주고 싶었다.

첫째가 여덟 달쯤 되었을 때
둘째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다.

임신 초기라 몸을 조심해야 했고
계속 졸음이 쏟아졌지만,
한편으로는
첫째와 놀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마음 한쪽에 따라다녔다.

둘째 임신은
첫째 임신과는 많이 달랐다.

첫째 때는 비교적 한가했고,
내 몸 안에서 아이가 자라는 시간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었다면,

둘째 때는
임신한 배 위로 첫째를 안고,
첫째와 함께 몸으로 놀며
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래도 배 안에 둘째가 있기에
첫째를 배 위에 올려두는 일은
항상 조심스러웠다.



첫째에게도 미안했고,
둘째에게도 미안했다.

첫째에게는
아직 너무 어린 아가인데도
엄마가 100% 다 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고,

둘째에게는
이제 막 생긴 아가인데도
엄마가 충분히 쉬지 못하고
몸을 조심히 쓰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다.

소중하게 찾아온 생명인데
첫째 때만큼 신경 쓰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했고,
첫째에게도
둘째가 오기 전만큼 온전히 대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
또 미안했다.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이
둘로 나뉘어지는 건 아닐지,

각자가 혼자일 때 받을 수 있는 사랑의 크기에 비해
지금 아이들이 받는 사랑의 크기가
줄어드는 건 아닐지
자주 생각했다.

그런데 미안한 마음만큼이나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도 컸다.

둘 다 너무 어린 아가들인데도,
엄마가 온 에너지를 쏟아주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각자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고마웠다.

무엇보다도
첫째와 둘째는 결국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깊고 소중한 관계가 될 거라는
믿음이 마음 한편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미안한 마음에만 너무 오래 머물지 말자고,
나 자신에게 조용히 말해주었다.

그렇게
연년생 육아의 시작은
크게 눈에 띄지 않게,
아주 조용히 다가왔다.


어느덧 배는 많이 불렀고,
둘째가 태어날 시기가 되었다.

코로나 시기라
첫째는 친정에 맡기고
둘째를 낳아 산후조리원에 들어갔다.

다행히 첫째는 외할머니를 잘 따랐고,
믿고 맡길 수 있었다.

첫째와 둘째가 처음 만나는 순간을
나는 유난히 신경 썼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첫째는 둘째를 웃으며 맞이했고
뽀뽀도 해주고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리저리 만지며
예뻐해주었다.

그 장면은
지금도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는 몰랐다.
이후의 시간이
이렇게 길게 이어질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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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 – 연년생 육아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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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Famil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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