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선 글에서는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일수록
배우자를 선택할 때
상대 역시
자신을 변함없이 존중할 것이라
자연스럽게 가정하게 되는 이유를 다뤘다.
이번 글에서는
그 결혼이 틀어지고 있다는 걸 느끼면서도
왜 떠나는 대신
버티는 선택을 하게 되는지를
따라가본다.
성실한 사람들이
관계 안에서
스스로를 설득하게 되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다.
김주하와 안현모는
결혼 생활 동안
배우자로부터
충분히 존중받는 관계를
살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주하는 인터뷰를 통해
남편의 외도와 폭력, 아동학대에 대해 이야기했고,
방송을 통해 비춰진
안현모의 결혼 생활에는
상대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능력도 좋고
인품도 좋은 여성들이
남편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배우자 선택에 책임을 느꼈고,
자신의 가정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이혼을 선택하지 않았다.
꽤 오랜 기간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고
그 오랜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을 인내하고 희생했다.
아마도
이런 믿음이 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스스로의 판단과 노력은
대체로 옳았다는 믿음.
공부도,
일도,
인간관계도 그랬다.
조금 더 참으면,
조금 더 이해하면,
결국에는 괜찮아졌다.
그래서 결혼 생활에서도
같은 방식을 그대로 적용했을 것이다.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내가 조금만 더 참으면
이 관계도 좋아질 거라고.
여기에
연애 기간이 짧았다는 조건이
다시 한 번 작용한다.

관계가 흔들릴 때,
문제를 확신으로 받아들일 만큼의
경험 축적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이다.
내가 아직 이 사람을
충분히 알아보지 못한 건 아닐까.
이게 진짜 모습이라고 단정하기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연애 기간이 길었다면
이미 한두 번은 겪었을 상황들이
짧은 연애 끝에 결혼한 경우에는
결혼 이후에야 처음 나타난다.
그래서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고,
그만큼
관계를 정리하는 결정도
늦어진다.
성실한 사람일수록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
상대를 의심하기보다
먼저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내가 덜 배려한 건 아닐까,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다시 괜찮아지지 않을까.
그렇게
문제는 점점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내 태도의 문제처럼
바뀐다.
그 과정에서
상대의 책임은
조금씩
자신의 인내로
대체된다.
그래서
관계가 힘들어질수록
떠날 준비를 하기보다는
고쳐보겠다는 결심부터 하게 된다.
이 관계가 틀렸다는 확신보다
아직 내가 덜 해봤다는 생각이
훨씬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인내가
항상 관계를 살리는 선택은
아니라는 데 있다.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관계를 회복하려는 사람이라면
이해와 기다림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자신의 자존심과 욕망이
우선인 사람 앞에서
지속되는 이해는
관계를 고치는 힘이 아니라
상대의 태도를
굳히는 힘이 된다.

이해심이 한없이 넓은 사람일수록,
관계 안에서
이해하지 못할 일은 점점 줄어들고
참지 못할 일도 사라진다.
상대방이
어떤 잘못된 행동을 해도
그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노력하느라
그 관계가
당장은 망가지지 않은 듯 보인다.
오늘 기분이 안 좋았나 보지.
내가 예민했던 걸까.
그러다 어느 순간
더 이상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게 된다.
이혼을 결심하는 순간은
대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기대가 조금씩 무너지고,
인내가 한계에 닿고,
더 이상
자신을 설득할 수 없게 되는
순간에 온다.
우리는 여기서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된다.
이 결혼을 끝내는 선택은
정말 실패였을까.
아니면,
이제야 비로소
착각에서 벗어나
하게 된 선택이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여기에는 없다.
다만,
그 선택을
섣불리
‘실패’라고 부르기 전에
가끔, 조용히 글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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