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1편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다.
둘째가 태어난 이후,
나는 본격적으로 연년생 육아의 한가운데에 들어갔다.
이 글은 그 시간을 지나오며 몸으로 겪었던 기록이다.
둘째 출산 이후,
첫째는 동생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작고 귀여운 아기를 보고
신기해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그 아기가
앞으로도 계속 자기 집에 함께 살게 되고,
엄마를 평생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이제 막 돌을 넘긴 아이에게
너무 이른 변화였다.
첫째는 태어나자마자
당연하게 누려왔던 것들 중 일부를
아무 준비 없이 내려놓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고,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언니라는 존재가 있는 삶을
전제로 살아가야 했다.
그래서 나는
첫째 위주로 돌아가던 삶의 중심에
둘째가 천천히 스며드는 방식을 택했다.
그것이 두 아이 모두에게
가장 덜 아픈 적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신 중 배가 부른 몸으로 첫째와 돌아다니던 시절,
이미 자녀를 다 키워낸 어르신들이
지나가며 반복해서 건네던 말도
이 선택에 힘을 실어주었다.
“둘째 태어나면 첫째한테 더 잘해줘야 해.”
“그때는 첫째를 더 안아줘야 해.”
한두 번 들은 말이 아니었다.
나는 신생아였던 둘째를 돌보면서도
첫째가 여전히 관심받고 있다는 느낌을
잃지 않도록 신경 썼다.
그 시기의 둘째는
자고, 먹고,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보내는 아기였다.
첫째를 질투할 만큼
사고가 발달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서 둘째를 안은 채
첫째와 계속 이야기를 나누며 놀았다.
내 몸 가까이에 둘째를 두고,
첫째와의 놀이 속에
아주 어린 동생을 자연스럽게 끼워 넣었다.
내 육아의 기준은 늘 아이의 정서였다.
첫째가 자신이 밀려났다고 느끼지 않도록,
첫째가 깨어 있는 시간만큼은
의식적으로 첫째에게 시선을 두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둘째는 어느새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고,
첫째도 서서히
둘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린 아기 둘을 기르는 일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모든 것을 혼자 해내려 하지 않았다.
주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덕분에
나는 버틸 수 있었고,
완전히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연년생 육아는 분명히 힘들었다.
잠은 늘 부족했고,
식사는 끼니를 챙긴다는 느낌보다
때우는 쪽에 가까웠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은 쉼 없이 이어졌고,
몸은 늘 한계에 가까웠다.
그래도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지나갈지에 대한 기준만큼은
잃지 않으려고 했다.

발달 시기가 다른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나는 필요한 물건을 주문하고
새로 알아봐야 할 것들을 다시 공부했다.
아이들은 자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 하루를 끝낼 수 없었다.
혼자 조용한 곳으로 떠나
며칠이라도 나만 돌보며 쉬고 싶다는 생각이
자주 스쳤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이
나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사실은
부담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생명을 책임진다는 일이
이렇게 무겁고 현실적인 일이라는 것을
그 시기에 자주 실감했다.
이 시간이
영원히 계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그 당시 두 어린 아이의 엄마로서
나 자신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지만,
두 생명을 책임지려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거쳐야 할 시기라고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긴 인생에서
지금은 이렇게 보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집 안에만 머무를 수는 없었다.
밖에 나가 바람을 쐬고
탁 트인 공간을 한 번이라도 다녀오면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하루가 훨씬 덜 답답해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혼자 아이 둘을 돌봐야 하는 날이면
나는 쌍둥이 유모차에 두 아이를 태우고
날씨와 상관없이 공원으로 향했다.
아이들은 유모차에 앉아
유리그릇에 담긴 과일을 먹으며
그날의 바람과 햇빛을 느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계절의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깨어 있는 시간 동안
나는 늘 아이들을 중심으로 움직였다.
나만의 시간이라는 것은
그 시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유모차를 밀며 걷다 보면
아이들은 둘이서 꺄르르 웃었고,
그 순간만큼은
나도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아이들이 어려
병원은 옆집을 드나들 듯 다녔다.
자주 가다 보니
소아과 직원분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고,
아이들은 병원 가는 일을
의외로 싫어하지 않았다.
쌍둥이 유모차에 나란히 앉아
노래를 부르고 장난을 치며
소아과로 향했다.
도착하면 직원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진료를 받은 뒤
비타민 캔디를 받아 나왔다.
나와 아이들에게 소아과에 가는 일은
필요하면 다녀오고,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부담 없는 일이 되어 있었다.
집에서는
첫째가 둘째 때문에
작은 장난감을 마음껏 가지고 놀지 못했다.
삼킬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의 놀이는 제약이 많았지만,
둘째는 태어나자마자
언니 덕분에
집 안 가득한 장난감을 누릴 수 있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부터
한참 뒤에 쓰게 될 것까지
집 안에는 늘 장난감이 넘쳐났다.
나는 이것을
둘째가 누리는 혜택이라고 생각했다.
언니 덕분에
조금 더 빨리 세상을 접하고,
놀이와 사람을 접하는 것.
서로의 놀이를 방해하며
티격대는 날도 많았지만,
어른이 아닌
자기와 비슷한 아이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둘에게는 묘한 공감대가 생기는 듯했다.
두 아이는 발달 수준이 달라
서로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집이 어지러워지는 속도는
자연스럽게 두 배가 되었다.
밤이 되면
집은 늘 엉망이었고,
매일같이 치우는 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을 때도 있었다.
그 시기의 나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돌보며
하루를 반복했다.
사회 속의 나는
없었고,
두 아이의 엄마만 있었다.
그럼에도
이 시기가 끝을 향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성실하게 보내려 노력했다.
그 시기의 나는
연년생 육아의
가장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밀도 높은 시간을 지나
조금 숨이 트이기 시작한 이야기를
이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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