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둥이 육아가 힘들다는 말은 누구나 한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래서인지
연년생 엄마들은 쉽게 힘들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다.
쌍둥이 육아가 더 힘들다는 인식이 워낙 강해서,
괜히 비교하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진다.
그래도 나는,
둘째를 낳고 나서 자주 이런 생각을 했다.
연년생 육아도… 이렇게까지 힘들 수 있는 거였나.
적어도 그 처음 몇 주 동안만큼은
연년생 육아가 쌍둥이 육아에 버금간다고 말해도
과장이 아닐 것 같았다.
아무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둘째와 첫째가 처음 만나던 순간
그 순간부터
집 안의 시간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밤에는 둘째 때문에 잠을 못 자고,
낮에는 첫째의 마음을 살피느라 하루가 지나갔다.
몸도 당연히 힘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몸보다 더 버거운 건
마음이었다.
첫째의 마음은 내 뜻대로 달래지지 않았고,
첫째에게도 둘째에게도
늘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그때의 나는,
몸보다 마음이 더 지쳐 있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게 정상일까.’
괜히 그런 생각까지 들었다.
그 시절,
나는 쌍둥이 육아 이야기를 자주 찾아봤다.
도대체 어느 쪽이 더 힘든 건지,
내가 느끼는 이 피로가 어느 정도의 무게인지
괜히 가늠해보고 싶었다.
사실
쌍둥이와 연년생을 두고
어느 쪽이 더 힘드냐고 묻는 건 조금 애매한 질문인지도 모른다.
임신과 출산부터 이미 다르고,
아이들이 자란 뒤에도 환경과 성향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지만
아주 어린 두 아이를 동시에 돌봐야 하는 그 초기 몇 달.
그 시기만 놓고 본다면
연년생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첫째의 마음이었다
첫째도 아직 아기인데
엄마 품을 갑자기 나눠 써야 했다.
둘째를 안고 있으면 첫째가 불편해했고,
첫째와 놀아주려 하면 이번에는 둘째가 울었다.
몸은 하나인데
두 아이는 저마다 온전히 나를 원했다.
육체적인 피로보다,
‘엄마로서 다 해주지 못한다’는 그 미안함이 더 아팠다.
그 감정이 오래 남았다.
하루의 리듬도 늘 어긋나 있었다.
둘째를 재우는 동안
잠이 오지 않은 첫째가 옆에서 노래를 불렀고,
첫째를 재우려 하면
이번에는 이미 낮잠을 자고 말똥해진 둘째가 울었다.
누군가는 자고,
누군가는 깨어 있고,
나는 그 사이를 계속 오갔다.
아이들은 자면서 체력을 회복하는데
나는 점점 바닥이 났다.
밥도 마찬가지였다.
한 명은 유아식,
한 명은 이유식.
밥을 차리고 먹이는 과정이 늘 두 번이었다.
그때는 문득
‘차라리 둘이 같은 걸 먹는 쌍둥이라면 조금 단순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쌍둥이가 더 쉽다는 뜻은 아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기가 둘,
모든 일이 동시에 벌어지고,
한 사람의 손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상황.
쌍둥이 육아 후기들을 읽을수록
그 또한 전혀 다른 종류의 고단함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내 결론은 늘 같았다.
어느 쪽이 더 힘드냐는 질문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
힘든 방향이 다를 뿐
결국 둘 다 버겁다.
연년생은
발달 단계가 다른 두 아이 사이에서 계속 마음이 갈리고,
쌍둥이는
모든 것을 동시에 감당해야 하는 물리적인 한계가 있다.
무게의 모양만 다를 뿐
가볍지는 않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숨이 트였다.
둘째가 크고,
둘이 함께 웃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이 노는 날이 늘어났다.
사실
언젠가는 괜찮아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언젠가’가 너무 멀게 느껴졌을 뿐이다.
어느새
지금의 나는
그때보다 훨씬 덜 힘들어졌다.
아마 다시 선택하라고 해도
결국 같은 길을 택할 것 같다.
다만,
그 시절의 나처럼
밤마다 검색창에
‘연년생 육아 난이도’,
‘연년생 vs 쌍둥이 육아 비교’를 적어보는 누군가가 있다면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당신이 유난한 게 아니다.
그 시기가
원래 그렇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이
비슷한 마음으로 그 시간을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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