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
-> 성실한 사람들은 배우자를 고를 때 왜 같은 함정에 빠질까?
앞선 글에서 이야기한 것은
성실한 사람들이
배우자 선택의 순간에
왜 잘못된 믿음을 갖게 되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믿음은
결혼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형태를 바꾸어
계속 이어진다.
오히려 그때부터
그 믿음에 기반한 사고의 흐름이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사람을 나와 비슷할 것이라 믿고 선택했다면,
이제는 이렇게 믿게 된다.
내가 조금 더 노력하고 이해하면
관계가 괜찮아질 거라고.
성실한 사람일수록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했을 때
상대를 의심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본다.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내가 덜 배려한 건 아닐까,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이 관계도 다시 제자리를 찾지 않을까.
그래서 관계가 힘들어질수록
떠날 준비를 하기보다는
이 관계를 바로잡고
그 과정을 인내할 준비를 하게 된다.
이 글은
그렇게 선택 이후에 시작되는 이야기,
왜 성실한 사람일수록
존중받지 못하는 관계 안에
더 오래 머무르게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많은 경우 그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대부분
노력하면 상황이 나아졌기 때문이다.
공부도 그랬고, 일도 그랬고,
대부분의 인간관계도 그랬다.
조금 더 참으면,
조금 더 이해하면,
결국에는 괜찮아졌다.
그래서 관계에서도
같은 방식을 적용한다.
내가 조금만 더 잘하면 되겠지.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면
성실한 사람들은
먼저 상황을 정리하려 든다.
무엇이 문제인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맞출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상대가 무책임하게 행동해도
그걸 성격의 문제로 단정하지 않는다.
요즘 힘든가 보다,
환경이 바뀌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고
이유를 대신 만들어준다.
그 과정에서
책임은 조금씩
자기 쪽으로 이동한다.
상대의 무례함은
내가 예민해서가 되고,
상대의 회피는
내가 이해가 부족해서가 된다.
그래서 관계가 힘들어질수록
상대를 평가하는 질문은 줄어들고,
스스로를 점검하는 질문만 늘어난다.
내가 더 잘하면 되지 않을까,
조금만 더 참으면
달라지지 않을까.
이렇게 믿게 되면
떠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진다.
문제가 상대에게 있다는 생각보다
아직 내가 덜 해봤다는 생각이
훨씬 설득력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둘의 문제가 아니라
혼자의 과제가 된다.
문제는
모든 관계가
노력의 총합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상대방이
배우자를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거나,
관계에서 책임을 지려는 의지가 없는 경우에는
아무리 한쪽이 성실해도
균형은 맞춰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고 선한 사람들은
관계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노력한다.
특히 상대가 배우자인 경우,
나의 선택과 나의 가정을
스스로 책임지기 위해
더 인내하고
더 애쓴다.
상대의 무례함을
성격 차이로 해석하고,
상대의 무책임을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린다.
그리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그래도 이 사람에게
좋은 면도 많잖아.
흔히 연애 기간이 짧았다는 점을
문제 삼는다.
연애 기간을 길게 가진 뒤
결혼하는 편이
배우자를 검증하기에
조금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을 아는 데에
시간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시간 동안
어떤 이야기를 나눴느냐다.
가치관, 책임감,
갈등 앞에서의 태도,
타인을 존중하는 기준.
이런 것들은
의도적으로 깊은 대화를 나누지 않으면
끝까지 드러나지 않는다.
부모도 자식을 다 알지 못하고,
오랜 친구의 속마음도
모를 때가 많다.
그렇다면
짧은 기간 연애한 뒤
결혼을 하게 되어
이런 부분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다고 해서
그 선택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연애 기간 동안
나에게 꾸준히 잘해주고,
매사 나에게 맞춰주며
함께 있는 시간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상대라면,
상대가 대부분 나와 잘 맞고
나와 비슷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상태에서
이 사람이 지금은 나에게 잘해주지만
미래에는 지금과 많이 달라질 수도 있고,
지금 보여주는 모습과는 상반된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어떻게 미리 예측할 수 있을까.
이혼을 결심하는 순간은
대개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기대가 조금씩 무너지고,
인내가 한계에 닿고,
더 이상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게 되는 순간에 온다.
그 선택은
실패라기보다
자기 인생을
다시 바로잡겠다는
결정에 가깝다.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이
사고를 당할 수 있는 것처럼,
성실한 사람이
관계에서 상처받는 일도
완전히 피할 수는 없다.
중요한 건
그 사고 이후에도
같은 길을 계속 가느냐,
아니면 멈춰 서서
방향을 바꾸느냐다.
선함은
버릴 성질이 아니다.
다만 관계에서는
선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존중받고 있는지,
책임이 나뉘고 있는지,
사과와 변화가
가능한 사람인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흐릿하다면,
아무리 많은 장점이 있어도
멈출 필요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이미 그 자리에
서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일찍 떠나도 괜찮고,
조금 늦게 깨달아도 괜찮다.
다만
자신을 계속 설득하며
버티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은
알았으면 좋겠다.
김주하와 안현모의 이혼 사례가
유독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이유는
아마도
성실하고 선한 사람들이
상대의 책임을
자신의 인내로 대체하게 만드는
이 구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그 관계가 힘들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 힘듦을 오랫동안
혼자서만 감당하고 있다는 점이다.